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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32회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32회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32회

2001년 부산 출생의 한 영화감독의 본인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한 영화가 개봉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어른이 되면서 각자의 삶을 살게 되고 어린 시절의 인연이 악연이 되어 서로를 겨누게 되고 결국엔 모든 것이 안타까운 비극으로 끝이 나는 누아르 영화. 바로 영화 '친구'이다.

영화가 시작이 되고 10분 즈음 흐르면 바다 위에 튜브 하나에 4명의 친구가 매달려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럼 그 정도도 안 빠르면 어째 금메달을 땄겠노?"

"그거는 사람들끼리 시합 한 거니까 그렇지. 그라고 사람은 물 위에서 헤엄친다이가"

"그라믄 사람이 우째 물 밑에서 숨을 쉬노? 사람은 물 위에서 헤엄치는 걸로 따지야지"

"그라니까 상대가 안 된다니까?"

"뭐가? 뭐가 상대가 안 되노? 어차피 누가 빠른가가 중요한 거지. 준석아, 니는 누가 더 빠를 것 같노?"

"뭐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믄"

"몰라"

-영화 '친구' 中


혜성처럼 나타난 사나이

1970년대는 조오련 선수와 바다거북이의 가상 시합이 어린 소년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사실 소년들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당시에만 해도 그는 이름 없는 무명 선수였지만 이후 그의 삶은 달라지게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조오련

 

또래들 보다 손과 발이 유난히 커 수영선수로서 좋은 피지컬을 가졌다고 평가가 되었지만 금메달을 목에 걸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금메달 하나도 대단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금메달을 2개(400m, 1500m)를 따내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수영 금메달리스트로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출처- 디지털해남문화대전

이후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도 400m, 1500m에 출전하여 다시 한번 2개의 금메달을 득했다. 그렇게 그는 '아시아의 물개'란 칭호를 얻게 되었고 이때 그의 나이 만으로 21세였다. 물이 그를 부르자 그는 부름에 당당히 맞섰고 그렇게 그는 아시아의 물개가 되었다.

1970년 대한민국 체육상을 시작으로 1980년 체육훈장 청룡장 등의 체육인으로서 영광스러운 상을 받기도 하였고 이후 수영의 대중화를 위해 수영교실, 스포츠 센터 등을 설립하고 앞장서 왔고 98년엔 대한 수영연맹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출처- 디지털해남문화대전


은퇴? 도전하기 딱 좋지 아니한가

 
 

그는 항상 이상하리만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80년 48km나 되는 대한 해협을 13시간 16분 만에 횡단했고, 1982년 34km의 영국 도버 해협을 9시간 35분 만에 횡단하는 등 걸어서 48km, 34km도 쉽지 않은 도전인데 그 거리를 수영으로 해내버린 것.

출처- 중앙일보

이게 끝이면 그가 전설이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다시 대한 해협을 횡단했고, 2003년엔 한강 700리 종주에 성공했다. 또 그는 슬하에 아들이 둘(장남- 조성웅, 차남 조성모)이 있는데 아들 둘과 함께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93km를 18시간 만에 횡단했으며, 2008년 민족대표 33인을 기리고자 독도를 33바퀴 헤엄치는 프로젝트마저도 성공해낸다.

출처- 오마이뉴스

사실 끝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성공과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 그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충격으로 당시 잘나가던 수영교실 사업을 접고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계속되는 도전이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일까, 그는 2009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되고 재혼하게 된다.


역사가 된 남자

그런데 안타까운 비극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2010년 2차 대한해협 횡단을 목표로 준비하던 도중 2009년 8월 4일 오전 그는 자신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게 되었다. 하늘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 그가 쓰러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KBS '인간극장'은 그의 재혼 당시(2009년 5월 11~15일 조오련의 신혼일기 편)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긴 것이 우리들이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를 기억하며

2020년이 되자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떠오르게 되었다. 바로 2020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그가 선정이 되었다는 것.

일반 국민들과 체육인단 및 기자단의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자 4인(김수녕, 선동열, 조오련, 황영조) 중 조오련이 선정이 되었다. 선정된 이유도 알 수 있었는데 국제 대회 금메달은 물론이고, 은퇴 이후에도 국민들에게 도전정신과 희망을 줌은 물론,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는 등 애국자로서의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조오련 선수의 이야기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야기 친구들을 통해서 더욱더 생동감 넘치게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그가 전설이 된 이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편은 오늘 6월 13일 목요일 저녁 10시 20분 SBS에서 시청 가능하며 SBS 공식 홈페이지 또는 웨이브에서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여학생 퍽치기살인 범인 꼬꼬무

홍대괴담

2003년 8월20일 어느 도서관에서 자격증 시험을 위해 공부중이던 회사원 홍 씨는 하숙집으로 가던 길에 느닷없이 기절을했다고 합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는데요. 간호사가 퍽치기를 당했다고 말해줬다네요. 누군가 달려들어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한 후 금품 등을 갈취해가는 강도 행위를 뜻하죠. 범인은 주로 현금을 노렸는데 이 분은 당시 현금 2만 8천 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겨우 이돈 때문에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위험한 행동을 계속한 겁니다.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사건이 발생되는데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홍대괴담 여학생 퍽치기살인 범인 꼬꼬무

 

미대에 다니던 유리씨는 가해자에게 공격받은 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단순 강도에서 살인사건으로 바뀌어 강력반 형사들이 범인 검거에 나섰고요. 하지만 단서가 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범인은 주로 밤늦게 혼자 다니는 여학생들을 타깃으로 했고 이게 괴담으로 퍼져나갔죠.

 

외상을 입었을 때의 흔적으로 보아 공사현장에서 쓰이는 정망치를 범행도구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금속 방망이인 것으로 밝혀졌죠. 둘 다 끔찍합니다 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홍대괴담 여학생 퍽치기살인 범인 꼬꼬무

경찰은 한 달간의 집요한 잠복수사 끝에 범인을 현장에서 검거했습니다!! 32살의 김 씨는 사업 실패로 빚 2억5천만원이 생겼고 빚 독촉 때문에 아내, 아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고 있는 상황이었다네요. 순순히 자백도 하고 피해자들의 물품도 보관 중이었는데 사망한 피해자의 물건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범행을 입증하려면 그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풀숲에 버렸다고 해서 경찰이 그곳을 샅샅이 뒤져서 핸드폰을 찾아냈습니다.

유리 씨를 왜 죽기까지 때렸냐고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끝까지 가방을 안 놓고 버티잖아요. 그래서 더 때렸습니다" 유리 씨는 어머니가 주신 용돈 10만 원을 지키려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본인도 가족이 있으면서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죠. 퍽치기로 벌어들인 돈이 60만 원밖에 안된다고 해요. 겨우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네요.